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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광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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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광정신

계광(啓光)이란?

계광(啓光)이란 "빛을 열다."라는 뜻으로 ‘계몽(啓蒙)’과 상통하는 말이다. 곧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에 교육을 통해서 나라를 구하기 위한 웅동지역 선조들의 피나는 노력이 담긴 말이라 할 수 있다.

이 계광정신으로 웅동땅에 ‘계광학교(1912년)’가 세워졌고, 계광학교의 교사들이 주축이 되어 '웅동4·3독립만세운동(1919년)'이 일어났다. 그래서 계광정신이란 "문화적·민족적 선구자의 투쟁정신"으로서, 이는 곧 “국난극복을 위한 웅동지역 선조의 애국애족 정신”으로 정의를 내릴 수 있으며, 아울러 웅동땅에 맥맥이 이어져오는 웅동인의 정신적 지주요 자부심이다. 우리는 그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고 길이 보전하는 자랑스러운 ‘계광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계광(啓光)정신과 웅동중학교

웅동중학교 역사에 보면, “일정 속박에서 민족 해방을 얻게 된 것은 3·1정신의 구현인 계광정신이 출발의 원동력을 이룬 것이다.”고 한 부분이 있다. 이것은 본 지역 교육 기관의 모태가 계광학교이고, 이는 경남 제일의 인재양성의 산실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계광학교는 웅동지역의 인재와 국권회복을 위한 지도자를 양성하였고, 1919년 4월 3일 웅동독립만세운동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일제에 의해 4, 5개월 동안 문을 닫기도 했지만, 무지한 사람들을 깨우치는데 앞장서다가 일제의 탄압으로 1930년 폐교되었다. 하지만, 월하 김달진 선생을 비롯한 여러 교사들은 향리의 모교에서 아이들을 교육하는 등, 외양은 폐교되었으나 내면으로는 계광학교의 정신이 도도히 전승되어 왔다.

이 정신을 이어받아 광복 직후 고등공민학교(교장 장영실)가 설립되었고,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교사 1명과 재학생 46명이 학도병으로 출정하였다. 이 학교가 모태가 되어 1952년에 웅동중학교(교장 정윤호)가 설립되었으며, 이러한 웅동인의 헌신적인 교육열정이 곧 계광정신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의 훌륭한 교육환경도 향토 출신 조변현 이사장의 교육에 대한 열정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이는 곧 웅동인의 교육 철학적 소산이라 할 수 있다.

웅동 지역의 인물들을 살펴보면, 계광학교 교사였던 주기용을 필두로 김병진, 배명국, 허대범, 정의화 등 국회의원 5명, 정일천, 신상철, 배길기 등 다수의 대학교수, 배수기, 이상해, 반순렬 장군과 대령급 등 많은 인사들이 배출되었다. 또한, 김동진 집안은 3대 법관이 탄생할 정도이고, 배명인 법무장관이 자란 곳도 이곳이며, 구상진 변호사도 소사 출신이다. 이와 같이 경남 제일의 훌륭한 명사가 웅동땅에서 많이 배출된 것은 바로 숭고한 ‘계광정신’이 존재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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